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로는 만화방이 빠질 수 없지요. 만화방 한 켠에서 만화를 쌓아 두고 읽던 나날들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요리 만화 장르는 1990년대에서 2010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다양한 작품들이 발표되었습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SNS나 동영상 서비스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 것이 바로 요리 만화 전집이었습니다. 중식, 일식, 한식, 가정식, 라멘 등 무궁무진한 소재와 다양한 음식에 어려 있는 우리의 삶이 담긴 이야기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는데요. 오늘은 추억을 되새기며 재미있게 탐독할 수 있는 요리 만화를 소개합니다.

 
 

음식에 담긴 한국적 정서와 맛, ‘식객’

 

요리에 담긴 따뜻한 한국의 정을 조명하는 ‘식객’(*출처 : 예스24)

 
❊연재 기간 2002-2010, 단행본 전 27권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전문 만화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맡은 이호준 작가가 이 만화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진짜 음식의 맛을 성실하게 정리했고, 허영만 화백 특유의 호감 가는 캐릭터가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했습니다. 화려한 리액션과 판타지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연과 음식의 유래 등을 전달하면서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기구이와 김치, 청국장, 칼국수와 만두 등 한식의 가치를 흥미롭게 표현하며 요리 만화의 원류인 일본에까지 수출됩니다. 진수와 성찬이 주인공이지만 정작 만화에는 이 둘보다 음식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을 다루다가 결국은 현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로 귀결되는데요. 이는 한국의 음식 밑바탕에는 정이 있다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식객’은 내용의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지역 음식에 등장하는 인물은 완벽한 사투리를 구사하여 표현했고, 실제 음식점의 이름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식객’에 등장한 실제 인물과 식당은 이 만화를 인쇄하여 홍보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중화요리의 혼이 담긴 ‘요리왕 비룡’

 

중화 요리사의 성장기를 담은 ‘요리왕 비룡’(*출처 : 예스24)

 

❊연재 기간: 1995~1999, 단행본: 1부 5권 / 2부 12권, 전 17권 완결

 

중화요리 대결을 통해 궁극의 맛을 표현한 요리 만화의 대표작입니다. 일본 원작명은 <중화일번 (中華一番!)>이며 한국에서는 <신 중화일미>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만화는 19세기 청조 말기 사천성 오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사천성을 대표하는 국영 요리점 <국하루>, 이곳의 불문율은 요리 대결로 총요리장을 결정하는 것이며 승부에서 이기게 되면 사천성 최고의 요리사로 군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마오라는 소년인데요. 부모님은 국하루의 총요리장이었으나 직원 쇼안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주인공은 부모님의 원수인 쇼안과 총요리사 자리를 두고 요리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요. 1권부터 펼쳐지는 중식의 향연은 이 작품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선사합니다.

 

1부에서는 총요리사 자격을 획득하고 광주로 떠나면서 진정한 요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고, 2부에서는 전설의 조리 도구를 찾아내는 무협 판타지 요소를 더했는데요. 여기에 요리를 먹는 사람들의 반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설의 누룽지탕을 먹고 “오옷! 와! 지극(지극한 행복)”의 감탄사와 함께 안드로메다로 가는 반응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장면인데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풍부한 액션으로 몰입감 있는 만화를 즐기고 싶다면 요리왕 비룡을 추천합니다.

 
 

초밥 만화의 바이블, ‘미스터 초밥왕’

 

일식 셰프의 일대기를 그린 ‘미스터 초밥왕’(*출처 : 나무위키)

 

❊연재 기간 1992-1997, 단행본 27권 / 전국대회편 1997-2000, 단행본 17권 전 44권

 
음식 만화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작품은 일식 셰프들도 필독서로 꼽는 수작입니다. 요즘은 맛집 탐방, 먹방 등이 유행이라면 그 이전에는 요리 경연 콘텐츠가 붐을 일으켰는데요. 요리 경연의 포문을 연 계기가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제는 <쇼타의 초밥 (将太の寿司)> 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쇼타라는 소년이 <사사초밥>이라는 기업의 횡포로 인해 가난하게 살다가 도쿄에 있는 <봉초밥>에 들어가 최고의 요리사로 성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버지께 생명을 드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행복을 주는 초밥을 넘어 생명을 주는 초밥을 추구하게 되는데요. 신라호텔 일식 셰프가 이 만화를 보고 직접 요리를 재현하고 작가를 초빙한 것으로 유명하며 한국에 초밥을 알린 계기가 됩니다.

 

초밥을 만드는 비법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초밥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칼의 장인 아버지와 가업을 잇지 않고 칼 공장에 들어가는 아들이 쇼타의 초밥을 먹고 아버지 인생의 진가를 깨닫게 되는 장면도 명장면으로 꼽히는데요. 처음으로 일을 배우고 전국대회까지 진출하기까지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이 만화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를 이어온 장인의 노하우가 담긴 ‘어시장 삼대째’

 

도쿄 츠키지 어시장에서 장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삶이 담긴 ‘어시장 삼대째’(*출처 : 인터파크 도서)

 

❊연재 기간: 2000-2013, 단행본 전 42권

 

풍부한 해산물 상식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신기한 만화입니다.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바로 츠키지 어시장인데요. 은행원 출신 아카기 슌타로가 해산물 장인의 뒤를 이어 도쿄 긴자 거리의 80년 전통 수산물 시장인 츠키지 어시장에 3대째 사장이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이 작품은 어시장 사람들의 진솔한 삶이 녹아들어 가 울림을 더하는데요. 다른 요리 만화와는 달리 과장된 리액션과 판타지를 더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구성이어서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집니다.

 

만화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동일한 생선을 어떻게 다루고, 먹는지에 대해 다른 방식을 알 수 있고, 다양한 생선이 스시전문점에 유통되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또한 가정에서 반찬으로 해 먹기 좋은 가성비 있는 생선들을 소개하고, 자연산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잘 관리된 시설에서 생산하는 양식 생선도 현명한 선택이다.’라는 조언도 덧붙입니다.
 
만화책 뒤의 부록에서는 작품에서 다뤄진 생선을 조리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방어, 가다랑어, 전갱이, 전어, 쥐치, 정어리, 복어, 청어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선들이 등장해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요. 일본 여행 중 수산물 시장에 갈 계획이라면 이 만화가 훌륭한 길잡이 역할이 되어줄 거예요. 2008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요식업 비즈니스를 통찰한 ‘라면요리왕’

 

라면의 비즈니스 세계를 사실적으로 담은 ‘라면요리왕’(*출처 : 예스24)

 
❊연재 기간 1/2부: 1999-2014, 3부:2020-현재, 단행본 전 33권

 

라면을 단순히 인스턴트 식품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만화를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 만화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라멘의 맛을 뛰어넘어 요식업 비즈니스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요. 1부 ‘라면요리왕’은 샐러리맨이자 라멘 마니아인 후지모토가 진정한 프로로 성장하며, 2부 ‘라면서유기’는 푸드 컨설턴트이자 요리 천재 유토리가 비즈니스로써 라멘 업계에 진출하는 이야기입니다. 3부는 ‘라면재유기’로 현재까지 연재 중이며, 한국판은 1부 26권, 2부 7권까지 발행됐습니다.

 

이 만화의 배경은 동네라멘 가게로, 맛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서민 물가에 맞춰 가격을 낮추고 가장 훌륭한 라멘을 선보이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데요. “손님은 최고의 맛을 경험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식사하러 온다.”, “새롭고 독특한 맛만큼이나 안전하고 익숙한 맛도 중요하다.”, “단골들의 훈수질에 휘말리면 망한다.”라는 대사로도 유명합니다.

 
 

삶을 위로하는 요리, ‘추억을 파는 식당’

 

추억의 맛으로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선사하는 ‘추억을 파는 식당’(*출처 : 예스24)

 

❊단행본 전 4권

 
‘추억을 파는 식당’은 잔잔한 수필을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손님들의 기억 속 메뉴를 재현해 감동의 순간을 진솔하게 그려냈는데요. 작가는 서두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 먹고, 또 먹고, ‘더 못 먹겠어’라고 한순간 눈을 뜹니다. 뭐야, 꿈이구나… 하고 안심했지만, 왠지 포만감은 남아있습니다. 사실 이 꿈은 ‘추억을 파는 식당’을 시작한 후부터 자주 꿉니다.”라고 서술하며 실제로 맛있게 식사한 듯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전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아버지와 형의 오므라이스’입니다. 작은 양식당 ‘다이키치’에서 장인 정신을 고집하는 주방장 아버지는 장남 다이요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기대했지만, 아버지의 방식과 다른 레스토랑을 오픈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선택받지 못한 다이리쿠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는데요. 주인공은 마음으로 빚은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이키치’ 대신 새로운 업장을 개업하려는 형에 맞서 가업을 지키기 위해 “추억의 맛”이라는 메뉴를 개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담긴 감동적인 요리를 만들어 줍니다. 만화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식 오므라이스, 전갱이 초밥, 고기 감자 조림 등이 맛깔스럽게 등장하는데요. 마지막에는 ‘다이키치’를 대표하는 ‘추억의 맛’ 메뉴가 사라지고, 이곳의 요리가 곧 추억의 맛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마무리됩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요리 만화들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해당 작품들을 보며 꿈을 키웠던 세대는 유명 셰프로 성장하거나, 작품 속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이제는 대부분 절판되어 한정판이 된 전집들. 추억의 맛은 저장할 수 없기에 소장 가치가 더욱 빛나는 작품입니다. 올가을에는 요리 만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