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파리바게뜨 미국 진출의 첫 요충지가 된 로스앤젤레스
미 서부가 개발된 지도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국인에게 서부는 개척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다문화, 다인종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미국 서부는 도시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미 서부 주요 도시의 특성을 통해 미국 서부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미국 속의 작은 동양, 샌프란시스코
l 개척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서부 개척을 지지했던 19세기 미국의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는 “젊은이여, 서부로 가라 Go West, Young Men.”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릴리의 이 말은 미국인의 모험심을 고취시켰고 개척정신을 불러일으켰죠. 1890년 미국의 서부 개척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서부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문화적 다양성의 상징으로 남아 당시의 개척정신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번화가를 거닐다 보면, 도처에서 아시아인과 마주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차이나타운과 재팬타운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리아타운은 없습니다. 물론 한국인 교포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항만타운인 오클랜드에는 ‘코리아나 플라자’가 있고, 그 근처에는 서울곰탕, 옛날 짜장, 포장마차 등 한글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죠. 아쉬운 것은, 늘 외국인으로 가득 차는 중국이나 일본의 음식점과 달리, 한국 음식점에는 주로 한국인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파리바게뜨가 서부에 매장을 낸다는 소식은 현지 한인들에겐 큰 이슈였습니다. 한국 브랜드가 한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학 도시 버클리와 내일의 도시 새너제이
l 대학의 도시답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내려 10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북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인 ‘베이 브리지’를 건너면 1960년대 미국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중심지였던 버클리가 나옵니다. 하버드, 스탠퍼드와 더불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 대학 랭킹 1,2위를 석권하고 있는 명문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이 있는 이곳에서는 놀랍게도 거리의 ‘홈리스’도 책을 읽습니다. 그것도 앨런 긴스버그의 <울부짖음>이나 잭 케로액의 <노상에서> 같은 비트문학의 경전들을 말이죠.
수백 년 묵은 거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도처에 개천이 흐르고 있는 버클리 캠퍼스는 도넛과 커피를 든 채로 강의실을 찾아가는 학생들로 붐빕니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지난 몇 년 새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버클리 대학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 매장이 오픈한 이후 학생들이 손에 도넛 대신 샌드위치나 파리바게뜨 베이글을 들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l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문을 연 파리바게뜨 호스테터점
버클리에서 오클랜드를 지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쿠퍼티노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인근의 새너제이와 산타클라라에 걸쳐 유명한 실리콘 밸리가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는 유명한 구글 본사도 있고,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각종 IT 관련 회사가 모여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는 한때, 인터넷을 이용하는 벤처기업들, 소위 닷컴 회사가 즐비했던 곳입니다. 첨단 전자단지인 이곳은 디지털 세계라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서부 개척정신과도 부합합니다.
미국의 서부는 어떤 의미에서 실리콘 밸리와도 같습니다. 수많은 인종이 각자 성공을 꿈꾸며 모여드는 곳,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 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의 서부이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구글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이 그러하고, 이민들의 성공적인 역사가 그러합니다. 얼마 전 이곳 새너제이에 새로이 둥지를 튼 파리바게뜨 또한 그러한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LA에선 어디서나 파리바게뜨를 만날 수 있다
l 미 서부에서 파리바게뜨와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 로스앤젤레스
별명이 ‘천사들의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는 미 51개 주 중 유일하게 히스패닉 인구가 백인을 추월한 도시이자, 한인교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인 윌셔(Wilshire) 지역(정확하게는 웨스턴 애비뉴와 8 스트리트)에 자리잡고 있는 코리아타운에만 한인이 12만 명 가량 살고 있어서 웬만한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굳이 영어가 필요 없습니다. 모든 상점, 약국, 음식점, 주유소, 슈퍼마켓이 모두 한인가게이기 때문입니다. LA 코리아타운의 한식 레스토랑은 외국인도 자주 찾는 곳이지만, 여전히 간판들은 한국어가 훨씬 더 크고 영어는 밑에 작게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미 서부에서 파리바게뜨와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코리아타운에만 이미 2개점을 운영하고 있는 파리바게뜨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글린데일에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l 로스앤젤레스를 둘러볼 때 빠지지 않는 곳, 할리우드
로스앤젤레스를 둘러볼 때, 빠지지 않는 곳이 할리우드와 할리우드 불리바드일 텐데요. 할리우드에 가면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대형 영화사의 스튜디오 투어를 할 수 있고, 할리우드 불리바드에 가면 ‘Walk of Fame’이라고 불리는, 길바닥에 박혀 있는 유명배우들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동판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할리우드 불리바드에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개최하는 유명한 ‘코닥 극장’이 있습니다. 비벌리힐스 근처에는 유명한 게티 뮤지엄이 있고, 조금 떨어진 애너하임에는 디즈니랜드가 있어서 교양인들과 아이들을 즐겁게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고, 멕시코 국경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샌디에이고는 사철 날씨가 좋고 범죄가 없어 은퇴한 사람이 많이 정착하는 부촌이면서, 미국 최대의 씨 월드와 동물원도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샌디에이고의 바닷가에는 수많은 해산물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어 미식가들을 손짓해 부르고, 발보아 파크나 벨몬트 놀이공원, 또는 라 호야 거리의 정취는 관광객의 발길을 이끕니다. 다리 건너 맞은편에 있는 코로나도 지역에 가면, 마릴린 먼로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를 찍은 코로나도 호텔과 아름다운 바닷가가 나옵니다.
파리바게뜨는 이미 글로벌 베이커리 브랜드다
l 파리바게뜨 호스테터점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
필자는 처음 파리바게뜨가 미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까다로운 미국인의 입맛을 과연 파리바게뜨가 잡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우려 섞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다문화, 다인종의 미국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공동의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식문화도 공유할 수 있음을 파리바게뜨의 성공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미국 서부는 베이커리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파리바게뜨는 그동안 쌓아온 제과제빵 노하우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갈고닦은 로컬라이징 전략을 미국 시장에 투입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베이글과 바게뜨 등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제품 구성이 단조로운 미국 베이커리 시장에서 파리바게뜨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미국인의 다채로운 취향을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 뛰어난 맛으로 한번 들른 고객은 여지없이 단골로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죠.
파리바게뜨의 성공 요인은 고급화 전략에 있습니다. 파리바게뜨가 자리한 곳은 어김없이 시의 중심부이거나 다운타운인 경우가 많은데요. 고급 레스토랑이나 베이커리가 모여 있는 곳에 입점함에도 파리바게뜨는 다른 브랜드에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매장을 압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참 고무적인 일이죠. 유럽, 특히 파리를 동경하는 미국 서부의 특성상 파리바게뜨는 브랜드 네임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선호 대상입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앞으로 파리바게뜨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글로벌 베이커리 브랜드로 자리 잡을 날도 머지않을 것 같습니다.
글. 김성곤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The Korea Herald 칼럼니스트, 한국 유네스코 Korea Journal 공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