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피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거의 불륜이나 다름없는 연애를.” 뜨끈한 피자를 한 입 가득 베어문 그녀가 황홀하게 읊조린다. 진하고 매끄럽고 고소한 모짜렐라 치즈에 상큼한 바질 향이 스타카토처럼 톡 튄다. 거뭇하게 그을린 도우의 쌉싸름함을 배경으로 잘 익은 토마토의 신맛과 단맛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입 속에서 섞이는 그 풍미가 아찔하다. 그녀는 ‘피자도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믿는 환각 상태이며 그로 인해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고 덧붙인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그 유명한 ‘마르게리타 피자’ 씬이다. 극장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강력했던 장면이다.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주인공 리즈는 욕심 많은 미국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외모와 커리어를 지녔다. 잘 관리된 바디라인까지 완벽 자체다. 그런 그녀가 한밤중 욕실 바닥에 엎드려 절망으로 물든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불행해. 그건 정말 확실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이혼 과정, 그로 인한 우울감, 계속된 연애 실패를 거치며 그녀는 사막이 됐다. 결국 모든 불행을 뒤로 하고 일년간의 여행을 떠나는 리즈. 한시도 다이어트를 잊은 적 없던 철두철미한 그녀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만난 극도의 쾌락이 바로 마르게리타 피자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새 친구를 사귀고 너무 맛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음식을 찾아다니며 쾌락을 만끽하는 그녀. 그런 쾌락의 상징이 이 영화에서는 나폴리 피자로 표현된다. 날려버린 고통의 무게만큼 체중이 불어나긴 하지만(무려 12킬로그램!) 그녀는 일분일초가 행복해 죽겠다. “왜 그렇게 마르려고 노력했지? 건강? 아니야. 사랑받기 위해서였어. 남자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학대했어. 이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면서.” 리즈는 타인이 주는 사랑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화해 간다. 친구가 뱃살을 걱정하자 그녀는 호탕하게 웃어제낀다. “한 치수 큰 바지를 사면 돼!” 라고 응수하며.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도우를 만드는 방식부터 화덕의 온도까지 엄격한 룰을 지켜야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전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자, 마르게리타. 19세기에 나폴리의 오래된 피제리아 장인이 사보이 왕가를 환영하기 위해 고안한 피자다. 각 재료는 이탈리아 국기의 빨강 초록 하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선택됐다. 왕비에게 바쳐진 이 피자는 영광스럽게도 그녀의 이름 ‘마르게리타’를 얻게 되었다. “대충 만든 거 아냐?”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외칠 정도로 빈약해 보이는 마르게리타 피자.그러나 단지 이 피자 때문에 ‘치안이 좋지않다’라는 경고마저 무시하며 나폴리를 찾을 정도로 그 매혹은 강렬하다. 나폴리의 좋은 물, 확실한 소금 맛,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밍밍한 토마토와는 아예 다른 종의 진한 토마토, 질좋고 신선한 올리브오일, 특별한 장작 화덕 등이 조화를 이뤄내는 근사함이다.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요리일수록 맛을 제대로 내기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마르게리타 피자는 재료가 간단한 만큼 재료의 신선함과 디테일이 중요하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제시하는 룰만 10페이지가 넘어간다. “도우는 반드시 가운데서부터 손으로 눌러 펴고 가장자리 부분의 폭은 2㎝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굉장히 엄격하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버펄로가 아닌 젖소 우유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드는데 그 맛은 버펄로 우유보다 진하고 고소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갖가지 토핑을 잔뜩 올려 부풀려진 미국 프랜차이즈 피자를 보고 “이건 피자가 아니잖아요.” 라며 코웃음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용산구 한남동 패션5 건물 3층에 위치한 베라 피자
그렇다고 나폴리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남동 ‘베라피자’에 들러보는 것도 대안이다. 이탈리아 D.O.P 인증(지역농산물 품질인증서)을 받은 올리브오일, 토마토 페이스트,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를 올려 참나무 장작에 구워낸 피자는 원료에서부터 제조방식까지 원조의 맛을 재현한다.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찾아 여러 나라를 떠돈 주인공은 결국 ‘내 몸에 완벽하게 편안한 인생’을 찾아 행복해진다. 종합 선물세트같은 복잡한 피자가 아니라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단순한 피자. 리즈는 후자와 같은 ‘진짜 인생’을 원한다. “이것을 넣으면 더 맛있어질까”해서 넣은 재료들이 음식 맛을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든 경험은 누구나 있으리라. 몇 가지 확실한 재료에 집중하는 것이 요리의 수준을 높이든,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글. 자유기고가 김은성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