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취향을 가진 탓에 평소에도 오래된 공간을 찾아다니곤 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아있고, 흔적이 깃든 공간에 흥미를 느낍니다. 공간이 간직한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러한 여행을 ‘빈티지 여행’이라 이름 붙여봅니다. 빈티지는 옛것을 재구성해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정서적 콘셉트입니다.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하고 있지만 낡고, 오래되어 가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길목 6월. 대구로 떠나봅니다.
1. 대구의 옛정취를 느껴보는 ‘향촌문화관’
대구역과 중앙로역 사이 북성로와 서성로가 만나는 길에 향촌문화관이 있습니다. 대구의 번화가 하면 ‘동성로’를 떠올리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성로와 향촌동 일대가 대구의 중심지였습니다. 향촌문화관은 옛 대구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입니다. 겉보기엔 현대식 건물처럼 보이지만 1912년에 지어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이후까지 대구의 모습을 세트장처럼 꾸몄습니다. 공구가게, 금은방, 영화관 다방 등 옛날풍경이 펼쳐집니다. 향촌동은 사람이 모이는 동네이자 문화예술인의 거리였습니다. 전쟁 때 피난 온 문화예술인들은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 모여 고단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1950년대 대중가요 코너에 발걸음이 멈춰 섭니다. 지금 유행하는 노래도 50~60년 후에는 머나먼 옛 노래처럼 들리겠지요.
파스쿠찌 대구금호강변점 내,외부 전경
대구에는 특별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파스쿠찌 매장도 있습니다. 높은 천장, 노출콘크리트, 드러난 배관 등이 빈티지한 멋을 더합니다. 한쪽 벽면에는 파스쿠찌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어요. 파스쿠찌의 시작은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금호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차 한 잔,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파스쿠찌 대구 금호강변점입니다.
파스쿠찌 대구금호강변점
주소 : 대구 동구 공항로54길 60
전화 : 053-983-8497
2. 낭만이 깃든 음악감상실 ‘녹향’
“향촌문화관 전시를 다 보고, 지하에도 꼭 가보세요.” 매표소 직원은 지하에 내려가 보라고 당부합니다. 향촌문화관 지하에는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이 있습니다. 살포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조명 아래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퍼집니다. 녹향은 광복직후 이창수 선생이 대구 지역의 음악 동호인을 모아 만든 음악감상실입니다. 1946년 향촌동 41번지 자택 지하에 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한 대를 놓고, 우리나라 최초 고전음악 감상실을 열었습니다. 이후 녹향은 6.25 전쟁으로 대구에 내려온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음악감상실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며 주변을 전전했습니다. 2011년 10월, 창업자 이창수 선생이 별세한 후 지금은 아들이 대를 이어 녹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잠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3. 예술로 목욕하는 ‘문화장’
대구 중구 문화동에는 오래된 여관과 목욕탕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겸 문화공간이 있습니다. 최근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문화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40년 된 여관 청수장을 다섯 명의 크리에이터가 모여 전시공간으로 꾸몄습니다. 기존에 있던 욕조와 여관방, 목욕탕 의자와 바가지 등 옛것을 최대한 남기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문화장은 각 공간을 아티스트에게 작업실겸 전시공간으로 대여해 주었습니다. 그림, 사진, 그래피티, 인테리어,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열립니다. 2층 목욕탕, 3층 여관, 4층 루프탑과 옥탑방 등 공간 곳곳이 예술로 채워졌습니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습니다.
4. 창작의 열기가 가득한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수창동은 구한말 대구의 여러 실개천이 지나는 저습지였는데, 1900년대 일제가 대구읍성 성곽을 허무는 과정에서 나온 흙을 이 지역에 매립했다고 합니다. 1910년 연초 제조공장이 들어섰고, 광복 후 담배공장이 설립된 후 1999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북성로 공구골목을 지나 수창공원을 향해 걷다보면 네모난 붉은 벽돌 건물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연초제조창 별관창고였습니다. 지금은 대구예술발전소로 재탄생 되어 카페와 전시관, 작가의 창작공간으로 쓰입니다. 공간의 규모가 제법 큽니다.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후 한 층씩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연중 크고 작은 전시와 행사가 열려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2층에 있는 만권당에서는 평소 보기 힘든 예술서적을 열람할 수 있어요. 전시관 외에도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쾌쾌한 담배냄새는 사라지고, 예술의 향기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5. 수상한(?) 주택가 ‘수창청춘멘숀’
대구예술발전소 뒤쪽에 낡은 공동 주택 두 동이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가가호호 살림집으로 쓰였던 기업체 사택입니다. 임직원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청년 예술가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지 않고, 창작공간으로 숨을 불어 넣었습니다. 겉에서 보면 칠이 다 벗겨져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깔끔하게 단장한 전시장이 이어집니다. 마치 예술가의 집에 초대를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작업실, 전시장, 오픈스튜디오겸 마켓, 창작 협업방 등 다양한 공간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필카로 찍는 패션사진, 함께 만드는 수제맥주, 뷰티화보, 나도 하는 빅밴드 등 제목만 들어도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오늘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대구의 빈티지한 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월이 깃든 오래된 공간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대구여행. 유명관광지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하루쯤은 공간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글. 자유기고가 박은하 님






